2022년 6월 12일 일요일

진리의 생사관*영산불교 현지사

 진리의 생사관



사후세계의 진실과 삶의 목표

이제 우리 삼보의 배는 신 해 행 증의
두 번째 여정인 해(배움)에 도달하였습니다. 이 장에서는 우
주와 인생의 진리에 대해 정확한 이해를 할 수 있게 설명해
드립니다. '법보론' 또는 '진리론'에 해당합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를 중심으로 교리간 상호 연결 지어 설
명해드립니다. 이번 여정에서 여러분들은 육도윤회의 고통
스런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
다. 

그리고 이 고통을 완벽하게 해결해주실 부처님의 감로
법을 만나게 되어 여러분의 생사관을 확고히정립하고 이
런 소중한 가르침을 주신 부처님께 대해 한없이 고마운 마
음을 갖게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럼으로써 여러분들의
신심도 더욱 깊어지게 될 것입니다.

사실 우주적 진리의 종교라고 자부하는 불교가
올바른 생사관 하나 제대로 정립하여 자신 있게 내놓지 못
한다면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어둠 속에서 갈 길을 몰라
헤매고 있는 미혹한 중생들에게 진리의 등불을 밝혀 인생
의 목표를 제시하고 생사 해탈에서 벗어나는 길로 인도하
는 것이 불교 본연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사관이란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올바른
생사관을 세우기 위해서는 우주 만물의 창조 원리에서부터
인간의 실체, 그리고 사후의 세계 즉 육도윤회의 세계와 해
탈의 세계를 모두 꿰뚫고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
니다. 이 정도가 되려면 붓다의 경지에 가야만 가능합니다.

그러니 부처님 이후 그 어떤 큰스님도 대선지식인도 다른
종교의 교주도 히말아야의 초인도 이 생사관의 영역을 완
벽하게 해설해내지 못했습니다.

지옥과 천당의 세계를 말한다던가, 수 세기를 죽지 않고
살아있는 신통의 방법을 이야기 한다던가, 환생의 신비를 설
파한다던가, 공의 세계를 깨쳐 오도송을 하는 정도의 수준
으로는 도저히 완벽한 생사관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 부처님께서는 2600여 년 전에 이미
연기법과 사성제라는 우주와 인생의 진리를 완벽하게 깨우
치시고 45년간 평생을 바쳐 잠시도 쉬지 않고 중생들을 위
해 생사관을 설법하셨습니다. 특히 사성제는 부처님께서 출
가한 동기를 부여했던 인생의 핵심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날 우리 부처님의 소중한 이 가르침은 많이
도 묻혀버렸을 뿐만 아니라 경전으로 기록된 부처님의 말
씀조차 제대로 믿으려하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사마외설이 판을 치며 중생을 유혹하는 혼탁한 세상입니다.
온갖 종교와 사상들이 모두가 저 잘났다고 우기는 어지러
운 세상입니다.

나지막한 산봉우리에 겨우 올라가놓고 마치 가장 높은
산의 정상에 올라선 양 함부로 진리를 팔아먹고 있는 말법
세상입니다.

지금은 진리의 암흑기라 불러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제
부처님의 법맥을 이어받은 영산불교 현지사에서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널리 펼쳐 이 진리의 암흑기에 종지부를 찍
고자 합니다. 진리의 잣대로 재단하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자는 진리 앞에 고개 숙이
는 자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진리 앞에 고개 숙이는 용기
있는 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영산불교의 가르침으로 이제
진리의 새 시대를 열어가겠습니다.

궁극적 진리는 하나입니다. 진리 아닌 횡설수설
로 진리의 메시지를 왜곡시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안목으로 진리의 말을 오도하지 마시
기를 바랍니다. 우물 안 개구리식의 종교나 사상의 잣대로
진리의 가르침을 비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리를 비방하
는 대망어를 하면 우주의 이법에 따라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정 어느 누구도 심판 받기를 원하지 않
습니다. 모두가 진리 앞에 숙연해지고 진리의 참맛을 향유
하는 현명한 분들이기를 바랍니다.

지금부터 우주 창조와 인간의 실체, 그리고 사후세계를
포함한 올바른 생사관에 대해 설명드립니다. 천금 같은 이
감로의 법을 잘 새겨서 여러분들 모두가 인생의 목표를 바
로 세우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요해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해탈론도 근거 잃어

무아라고 윤회 주체인 영혼체를 부정하면 육도윤
회도 해탈론도 사실상 성립할 수 없습니다. 해탈
열반이 무아라면 불교의 존재 이유가 있을까요?

불교 수행의 목적은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고통이
없는 해탈계로 가기 위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중
생의 이 고통을 해결해주시기 위해 출가하셨습니다.

그런데 윤회하는 주체인 영혼체도, 해탈계로 가는 주
체인 영혼체도 없다면 결국 육도윤회도 해탈이론도 사
실상 성립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누구를 위
해 무엇 때문에 수행하고 해탈를 이루려고 하겠습니까?
대상주체도 없는데 말입니다.

나의 주체인 영혼체가 있어야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
열반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해탈 열반이
아무 것도 없는 무화를 의미한다면 불교의 존재 의미가
사라집니다. 부처님의 구원사상도 의미가 없어집니다.

부처님께서 중생의 고통을 구제하기 위해 6년 동안
그렇게도 혹독한 고행 난행을 하여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신 것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영혼체를 부정하면 불교가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부처님과 보살님의 존재 부정

윤회 주체인 영혼체를 부정하면 불보살의 존재도
부정하는 것입니다.

왜 불교를 믿어야 하는지요? 경전의 그 많은 불
보살님은 가공인물인가요?

영혼체를 부정하면 본체계에 존재하는 실체를 부정
하게 되므로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계로 간 성
자들의 존재마저 부정하게 됩니다.

불교 경전에 나오는 그 수많은 부처님, 보살님들을
부정하고 어떻게 불교를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경 중
의 경이라고 하는 <<법화경>>과 <<화엄경>>에 나오는
부처님의 엄청난 위신력은 모두 소설이나 비유로 본다
늘 말입니까?

<<법화경여래수량품>>에 나오는 구원실성하신 부처님
은 도대체 어떤 존재로 해석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붓다가 되면 생기는 세 가지 몸 중, 보신불은
네 개의 영체가 들어간 빛의 인격체로서 우리가 믿고
의지해야 하는 본불입니다. 32상 80종호의 거룩한 상
을 갖추시고 눈 뜨고 바쁘게 활동하시는 부처님이십니
다. 이런 부처님을 안 계시다고 하면 엄청난 망어입니
다. 그래서 영산불교의 첫 번째 사상이 부처님 실존관
입니다.

이런 부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불교는 불교가 아
닙니다. 불공을 드릴 필요도 없고 예불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출처/2천년간 무아윤회 논쟁에 종지부
         영혼체 윤회론
펴낸곳/현지사-영산불교사상연구소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