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16일 목요일

비아설(非我說) - 비아(非我)가 윤회한다

 비아설(非我說) - 비아(非我)가 윤회한다 

 

 

 

불교의 역사가 2600년이지요. 깊은 선정에서, 더 깊은 고요에서 볼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무량겁 전이죠? 그건 우리가 다 아셔요. 이 점만 해도 대단하십니다. 


어쨌든 우리가 이 인간세계에 사람 몸을 받아와가지고 지금 살고 있잖아요. 그 2600년의 불교역사가 너무도 왜곡 되었다는 말입니다. 뭐가 왜곡 되었느냐? 여러분, 이제는 이 노래를 자꾸 불러야 되겠어요.

 

뭐가 왜곡 되었느냐? 이 왜곡된 부분을 그 어떤 석학도, 그 어떤 큰스님도, 그렇게도 많이 출세했던 큰스님도, 이것을 이야기 못했습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부처님에 버금간다고 하는 인도의 '용수보살'도, '마명'이라고 하는 그 보살도(그 큰스님도), 그 다음에 200~300년 후에 출세했던 '무착', '세친'이라는 엄청난 논사도, '고법'이라는 분도 이걸 몰랐습니다. 정말 몰랐습니다.

 

뭘 몰랐느냐? ‘비아(非我)가 윤회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비아(非我)가 윤회하는 거예요. 무아(無我)는 윤회할 수가 없어요. 무아(無我)는 윤회의 주체가 없습니다. 무아(無我)라는 것은 나(我)가 없다는 거예요. 내가 없는데, 말할 놈도 없고 ․ 말할 주인도 없고 ․ 행위 할 주인도 없는데, 여러분들은 지금 말하고 행위를 하고 있잖습니까?

 

저 지금 비아(非我)를 모르는 우리 불쌍한 불교계 인사들, 생각하고 말하고 행위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그 본체를 부인한다는 것은 이건 상식이 아닌 거예요. 여러분, 나(我)가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죽어서 나갈 놈도 없습니다. 태어날 때 반드시 그 식신(識身)이 와야(영혼체가 와야) 잉태(수태)가 되는 거예요. 이걸 모르면 이건 불교도 아니고, 종교도 아니고, 자격이 없는 거예요. 불교는 정말 위대한 종교입니다. 우리 영산불교, 정말로 위대한 종교올시다.


스님이 TV나, 라디오나, 세계적인 매스컴이 오면 터뜨리려고 한 거예요. 놔둔 거예요.《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권에는 싹만 보인 거예요. 


2600년 동안 무아설(無我說)이 너무너무도 고착화 되어버렸어요. 이걸 때려 부숴버려야 되요. 그래야 정말로 불교가 사는 거예요. 21세기를 불교가 향도할 수 있는 거예요. 모든 불교와 모든 종교를 통합할 수 있는 거예요.

 

진리 앞에는 모두 다 무릎을 꿇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Ⅱ》탄에는 한 장(章)을 다루었습니다. 무아설(無我說)과 윤회의 주체에 대한 언급을 했지요. 그리고 이제 기회를 본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자기들의 걸음으로 왔어. 자기들이 온 거예요.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걸 자르지도 말고 그대로 방영하겠느냐? 그대로 내보내겠느냐?

 

두 번 세 번 내가 다짐 받은 거예요. 그러면 계약을 하자. 그래서 도장을 찍었습니다. 자세한 기록은 자기들이 해오지 않고 도장만 찍어왔더라고. 그래서 내가 웃고 말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비아설(非我說)이 나가고, 무아설(無我說)을 부정하고, 이걸 때려 부수니까 교계가 발칵 뒤집힌 거예요.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교수들이 난리난 거예요. 그럴 만도 한 것이 무아설(無我說)은 불교의 생명이올시다. 이 무아설(無我說)은 그 동안의 생명입니다.

 

이런 무아설(無我說)을 부정하니까 난리가 난 것이지요. 여러분, 내가 인터넷을 보니까 여러분들이 그분들 보다 더 낫더라고요. 정말입니다. 유식의 권위자라고 하는 모 교수, 어느 큰스님의 말은 이렇답니다. 그리고 모 종단의 공식 성명은 이렇습니다. 


‘영혼체가 없다’하는 것이 공식 성명입니다. 본분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되요. 그 사람, 소위 한국을 대표할 만한 석학이라고 하는 교수가 하는 말인 즉, ‘의식이라는 것은(심식이라는 것은, 식이라는 것은) 이 근(根)과 경(境)이 반연(攀緣)이 되어가지고 생기는 것이다.

 

근(根, 六根)이 없어져버리면(죽어버리면 그 말이어) 따라서 식(識)도 없어져 버린다.’ 이게 그 사람들의 생각과 주장이고, 지금까지 불교의 생각이었습니다. 이것은 정말 사설(邪說)이고, 사마외설입니다. 이 몸뚱이가 죽어버리면 영혼도 죽어버린다는 그 말이 맞습니까? 


여러분, 이건 유물론적인 인식(관념)입니다. 이것은 유물론자들의 생각이올시다. 유물론에서는 생각이라는 것은 뇌의 산물이다 그럽니다. 그러니까 이 육신, 뇌가 죽어버리면 그 산물인 것은 당연히 없다(죽어버린다). 


이게 유물론자들의 생각이어요. 그런데 불교의 그 생각이 그 유물론적인 생각이라고 하면,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이 불교는 더 클 수가 없는 거요.

 

이 무아설(無我說), 윤회설이 2600년 되었습니다. 우리 불교의 사상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이 무아(無我), ‘무아(無我)인데 어떻게 윤회하느냐’ 하고 힌두교의 여러 학파에서 막 포화를 뿜은 거예요(공격한 거예요). 


거기에 대해서 부파불교의 석학들이 그걸 대답하려고(무아설(無我說)이면서 윤회 한다는 것을 양립하려고, 어느 하나를 포기해 버리면 되는데 이 두 사상은 불교의 양축이니까 이걸 둘 다 양립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연구하고 연구한 것 들이 전번 시간에 이야기 했던 경량부의 심상속 이론, 독자부의 푸드갈라 이론, 그리고 여러 부파불교에서 이야기 했던 소위 여러 식(識)이론, 대승으로 넘어와 유식에서 제8아뢰야식을 내놨어요.

 

이건 안 되는 거요. 식(識)이 어떻게 윤회합니까? 전번에도 이야기했지만,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대단히 불심이 장하고, 좋은 일도 많이 했다면 그 영전 앞에 무릎을 꿇고 합장하시고 이러실 거예요. 


‘우리 어머니는 좋은 일 많이 하시고, 불교를 돈독하게 믿으셨기에 부처님 나라로 혹은 극락세계에 왕생하소서’ 하실 거예요. 안 그러겠습니까? 저 사람들의 말대로라면 극락세계에 왕생할 주체가 없는데, 누가 가느냐 그 말이어요. 식(識)이 갑니까?

 

식(識)은 추상적인 개념입니다. 식(識)이 가는 것이 아니어. 식신(識身)이 가는 거예요. 식(識)의 몸뚱이가 가는 거예요. 식(識)이 들어있는 몸뚱이, 그것을 영혼체라고 해요. 지금까지 영혼이라는 말은 했지만 영혼체라는 말은 그 어느 종교에서도, 철학에서도 나오지를 않았어. 


다만, 몇 명의 힌두교 성자들이 영혼체라는 말을 했어. 기원전 그 사람들은 영혼체도 봤어요. 힌두교의 상키아학파의 이론을 들어보면 영혼체 이야기가 나옵니다.

 

붓다의 경계에서 영혼체를 자세히 압니다. 보살의 경계는 영혼체가 있는 것을 알아요. 영혼체를 봐요. 상품보살의 경계에서 영혼체를 봅니다. 그러나 영산불교에서 처럼 여러분이 영혼체에 대해서 잘 알지만 더욱 정리를 해드릴 거예요. 


이렇게 자세히 보는 것은 붓다의 경계에서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의 무아설(無我說)을 바로 잡지 못했어요. 비아(非我)로 잡아야 되는데, 바로 잡지를 못했어. 2600년이 흐른 오늘, 이제 우리가 이것을 내놓는 거예요.

 

인도 땅에 세계적인 종교가 셋이 나왔습니다. 힌두교, 불교, 자아나교입니다. 자이나교도 대단합니다. 그 자이나교에서도 '업신' 정도를 봤어요. 그 사람들은 그것을 영혼체라고 안 하고 '업신'이라고 했어. 


보기는 했습니다. 자이나교의 바르다마나(마하비라, 기원전 559~527년)교주는 그 정도 수준이 되었어요. 그러나 우리 현지사에서 말하는 그 자상한 영체의 내용은 몰랐습니다. 알 도리가 없지.

 

우리는 너무도 자세히 알기 때문에《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Ⅱ》권에서도 그렇게 해왔지만, 보는 사람들은 우리 학자들도, 석학들도, 큰스님들도 이게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를 못해. 그게 당연해요. 그렇다면 적어도 '가섭이다', '아난이다'하고 나온 사람이 법문하고, 쓴 책이라면 정말인지 아닌지를 봐야지. 그런 분들이 아니면 이걸 쓸 수도 없는 거예요.

 

이것은 내놓을 수가 없어요. 힌두교(힌두이즘) 여러 학파의 석학들한테 무아설(無我說)이 완전히 깨어져버린 거예요. 사상적으로 눌려 버렸어. 논쟁에서 완전히 패배해버린 거예요. 


그래서 아쇼카 대왕이나 칸슈카 대왕, 그후 300~400년 후에 출세했던 그런 분들이 전 인도를 통일해가지고 불교화 했는데 밀려나와 버린 거예요. 여러분, 얼마나 억울합니까? 그것을 지금 내가 들고 일어난 거예요. 이건 역사적인 사실이어요. 내가 지어서 한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 코페르니쿠스라는 분을 알지요. 코페르니쿠스, 지동설을 세상에 선포한 사람입니다. 그 당시는 중세였어요. 이태리 로마 교황권이 막강한 세력을 거머쥐고, 심지어 서구 열강들의 왕권을 쥐고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거슬리면 종교재판에 회부하고, 기독교 성서에 어긋난 발언을 했다든지, 또는 그런 행위를 하면 신의 이름을 빌어 마구 처단했습니다. 스님이 언제 여러분에게 마녀사냥을 이야기 했나요? 기독교가 서구를 꽉 쥐고 있었을 때예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의 섬 쪽을 발견하고, 나중에 신대륙을 발견했는데, 그 신대륙에 진출하기 위하여 종교라는 미명으로 북미 중미 남미 원주민들을 마구 학살한 거예요. 자기들은 신의 군대다, 신의 교도다 그거예요. 


얼마나 많이 죽인 줄 압니까? 여러분, 알아야 됩니다. 스님이 남의 종교이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나, 알아야 됩니다. 원주민을 죽인 수가 1,000만명, 아니 1억도 더 되요. 지금의 통계를 보면 2억이어요.

 

이렇게 많이 원주민을 죽여 버린 거예요. 그리고 땅을 뺏고, 부녀자를 강간 약탈하고, 방화하고, 정부 재산을 전부 도적질한 거예요. 그것도 모자라 아프리카로 가서 죄 없는 원주민들을 마구 죽이고, 노동력이 될 만한 청년들을 갖다가 노예로 팔아먹은 거예요. 


죄 없는 원주민들은 아버지가 잡혀가니까 부인과 애기는 서럽게 살지. 당초에 노예도 아닌데 강제로 노예의 신분으로 만들어 미주로 데리고 가서 노예로 팔아먹은 거예요. 그 광활한 땅을 그렇게 해서 경작하여 돈을 벌어먹은 거예요. 이러한 죄악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한 때에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부르짖은 거예요. 성경에 기록 되어 있는 것은 글자 한자, 한 획도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진리다 그거예요. 한 글자, 한 획이라도 절대 고치지 못해. 그런데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발표 했어. 


그 성경에 적혀 있는 것은 천동설이어. 하늘의 별이나 지구의 주위를 태양이 돈다고 하는 거예요. 그것을 천동설이라고 해. 그런데 지동설을 가지고 나오니까 어떻게 됩니까? 발칵 뒤집힌 거지.

 

그러나 코페르니쿠스는 발표하고 수 십 년 만에 저 세상으로 갔지만, 그 다음에 천문학자들이 천체를 관찰하고 실험해 보니까 코페르니쿠스가 한 말이 맞거든. '부르노'가 그래서 화형에 처해진 것 아닙니까? 지동설을 부르짖는다고 불에 태워서 죽여 버린 거예요.

 

나중에 그 유명한 갈릴레오가 잡혀가 공개재판에 회부 되었어. ‘너도 지동설을 주장하는데, 이 자리에서도 주장할 것이냐, 아니면 승복하겠느냐’고 했거든. 그러니까 갈릴레오는 지동설을 주장하지 않겠다고 해버렸어요. 


그래서 살았습니다. 살아가지고 법정을 나오면서 혼자 투덜거리는 말이 있지요.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했어. 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너무도 유명하기 때문에, 어떤 사상과 정반대되는 사상을 ‘코페르니쿠스적이다’라고 표현합니다. ‘코페르니쿠스적인’이라는 말을 씁니다. 그것도 아실 겁니다.


인도 남쪽의 섬나라 스리랑카를 아시죠. 19세기 후반에 스리랑카에서도 기독교와 불교의 대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불교는 무아설(無我說)을 바탕으로 한 이론이고, 기독교의 철학은 유일신을 바탕으로 한 이론이죠. 여러분, 기독교의 철학을 아시죠? 양측에서 서로 논쟁한 것들은 지금의 영산불교 현지사에서 보면 둘 다 바보예요. 그걸 우문우답(愚問愚答)이라고 해. 그렇게 끝났습니다.


전번에 스님이 이야기했나? 이 과학계, 특히 물리학계에서 ‘진공이 있다 없다’하는 두 파가 2000년 전부터 싸웁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정점으로 하는 흐름은 없다고 하고, 원자론을 내놓은 데모크리토스를 정점으로 하는 그 흐름은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2000년 동안의 논쟁으로 끌어 온 거예요. 끌어왔는데, 아인슈타인이라고 하는 세계적인 거두가 나와서 특수상대성이론을 내놓습니다. 특수상대성이론을 알지요? 전번에 스님이 말했지요.

 

에너지는 곧 질량이라는 것(E=mc^2). 1g의 질량을 가지고 완전히 연소해서 열량으로 빼면(열로, 에너지로 빼면) 10만㎾의 발전소가 250시간 쓸 수 있는 양이어요. 그런 세상이 되면 어쩐다고 했지요? 살기 편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석유가 없어도 되지요.


 그렇잖습니까? 이인슈타인은 이런 위대한 발견을 한 사람이어요. 그리해서 그 분이 통일장이론을 내놓았는데, 그 통일장이론을 완성은 못했지만 그분의 업적에 의해서(물론, 그 앞뒤 과학자들의 업적으로 해서) '있다 없다'가 잠재워져 버립니다.

 

봉합되어 버립니다. 그걸 아십니까? 봉합이 되었어요. 그러니까 이 두 논쟁이(있다 없다하는 논쟁이) 어떤 위대한 분에 의해서 이론 제기는커녕, 반론을 제기치 못할 정도로 되어버립니다. 


그러면 이제 그 두 논쟁은 잠자고, 새로운 이론이 힘을 얻게 되는 거예요(세계화 되는 거예요).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코페르니쿠스적인 지동설은 두 논쟁이 아니고, 확고하게 믿었던 천동설, 그 기독교 세력 하에 있었던 그 당시에 새로운 설을 내놓는 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거예요. 어마어마한 위험이 따른 거요. 코페르니쿠스가 살았다면 화형 감이었지요. 그걸 아십시오.


그 다음, 선불교에서도 돈점논쟁(頓漸論爭)이 있습니다. 돈점논쟁(頓漸論爭)을 아시는 분은 아실 거예요. 선불교에서 돈점논쟁(頓漸論爭)이 있습니다. 선불교는 어떤 종교냐? '심즉시불'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마음이 부처다'하는 거예요. 


마음이 부처다, 마음을 깨치면 부처다 하는 사상을 들고 나온 것이 선불교입니다. 돈오돈수(頓悟頓修)와 돈오점수(頓悟漸修)의 돈(頓)자와 점(漸)자를 합해서 돈점논쟁(頓漸論爭)이라고 하는데, 돈오돈수(頓悟頓修)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최근 우리나라에서 입적했지만,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주창한 그 어떤 큰스님이라는 분이 계셨죠? 돈오점수(頓悟漸修)를 주창한 분은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주장한 스님보다도 몇 백 년 전 인물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스님인데, 그 인물을 아십니까? 한번 말해 보세요. 고려때 스님인 '보조국사 지눌'이예요. 보조는 돈오점수(頓悟漸修)를 주창했어요. 돈오점수(頓悟漸修)는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다겁생으로 내려온 우리 중생들은 번뇌망상 삼독번뇌 업장 습 등 이런 것이 있단 말이에요.

 

이것이 다 녹아야 되니까 충분히 보림을 해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돈오돈수(頓悟頓修)는 그것이 아니고, 그저 신문도 보지 말고, 라디오도 듣지 말고, 오직 화두일념으로 가라. 오직 화두일념으로 가라. 그래서 크게 깨쳐버리면 닦을 것, 무슨 번뇌망상, 업장, 이런 것이 전부 떨어져 버린다. 


그냥 여래지에 든다 하는 것이 돈오돈수(頓悟頓修)입니다. 그분은 가셨지만, 이 큰스님에 의해서 돈점논쟁(頓漸論爭)이 주창되니까 이것은 매스컴에 조명을 받으면서 다룰만한 깜이거든(다룰만한 기사거리거든). 그래서 한참 많이 다루었습니다. 그런데요 선불교는 불교의 한 지파입니다. 그렇잖습니까? 여러분이 또 아셔야 돼.

 

그러면 우리가 본단 말이어요. 영산불교에서 봅니다. 돈오돈수(頓悟頓修), 돈오점수(頓悟漸修), 돈점(頓漸)에서 돈(頓)이 맞느냐 점(漸)이 맞느냐? 둘 다 아닙니다. 내가 이 법상이 아니고, 여러분 몇 사람하고 앉아서 이야기한다면 참 웃기는 이야기를 해버릴 것입니다. 그것은 둘 다 아닌 거예요. 인간의 한계는 잘 수행해야 어느 정도 간다고? 아라한입니다. 그런데 자력으로 어떻게 불과(佛果)를 증합니까? 보살과(菩薩果)도 어렵습니다.

 

 왜 어려운지 아는 사람? 혼자 힘으로(자력으로) 보살과를 이루기가 왜 어려운줄 아십니까? 네 가지, 다섯 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지요. 이거 기가 막힙니다. 여러분이 이 정도를 아니까, 우리 현지사 신도 분들의 수준은 상당하지요. 


내가 그분들을 다 알거든요. 나한테 오면 내가 그렇게 법문을 해줍니다. 그러면 아무 말 없이 듣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알아. 그 수준을 알거든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훨씬 낫지요. 훨씬 낫지.


정토보살이 자력으로는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첫째, 거기에 아기보살을 만들 수 없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붓다의(부처님의) 우주적인 능력이 아니면 정말로 안 됩니다.

 

������둘째, 변녀성남(變女成男)입니다. 여자 분들이 정토에 갈 경우 4영체 모두 다 고추를 달아줘야 돼. 누가 답니까? 자기혼자는 절대 안 돼. 그 변녀성남의 어려움입니다.

 

������셋째, 영체분리입니다. 이건 정말로 부처님 아니면 안 됩니다. 자이나교 교주인 '마하비라', 그분은 영체를 보기는 했지만 어떻게 영체를 꺼냅니까? 못 끄집어내. 영체를 끄집어내려면 붓다의 힘이 있어야 됩니다. 딱 꺼내려면 부처님이라야 돼. 그래서 분리를 딱․딱해 놓거든요(가지런히 해놓거든요). 우리 스님들 모두 다 보살을 만들려고 그 절차를 밟아줘요. 여러분도 해주는 사람 있어요. 영체분리까지 해준단 말이에요.

 

영체분리를 다해주고 정화해 주는 거예요. 씻어 줘. 빛으로 부어줍니다. 그래야 4영체가 밖으로 나와가지고... 4영체가 모두 다 막으로 싸여있기 때문에, 또 막으로 간격이 다 엉켜있기 때문에, 껌과 같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 분리작업을 하고 그 무량억종광으로 퍼부어(씻어) 주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다시 하나로 해서 딱 넣어줍니다. 그러면서 또 이제 빛으로 해주는 거예요. 보살이 되려면. 그러니까 영체분리가 안 되죠? 그 어떤 성자도 못합니다. 여러분, 부처님 다음가는 성자들도 못합니다. 스님이 거명을 하고 싶지만 이 석상에서 말하기 곤란합니다.

 

어쨌든 다른 종교의 교주도 안 됩니다. 그 작업을 못해요. 우선 영혼체의 내용도 모르는데, 어떻게 끄집어 낼 실력이 있습니까? 또, 어떻게 분리할 실력이 있습니까? 어떻게 무량억종광으로 퍼부어 줍니까? 자기의 몸뚱이는 무량억종광이 아닌, 차원이 낮은 빛으로 이루어져 있는 데요.(※한 삶 정리는 그 속에 포함이 안 돼. 물론 나쁜 원결이(그 사람하고 아주 상극의 원결이)태어났다? 


그런데 그 사람이 벌써 30대다 하면 만날 시간이 되잖아요. 만날 시간이 되면 저 사람이 이 사람한테 맞아 죽을 수도 있잖아요. 전생에 죽였으니까. 그 상극의 원결을 지었다면 말이에요. 그러면 그때 한 삶 정리를 해줘버립니다. 그러면 안 만납니다.)

 

������넷째, 마장(魔障)입니다. 잘 아시네요. 마장(魔障), 내마와 외마가 있는데, 내마는 색신이라는 것을 아시죠. 외마는 천마, 용신, 이매망량 등등인데, 자세히 보면 많아요. 어쨌든 이런 등등의 내․외마를 막아줄 사람이 없으면 아라한이 되고, 보살이 되려면 이거 엄청나. 도고마성이어요. 그 말이 맞는 거예요. 도고마성.

 

이거 막아줄 사람이 없어. 그렇기 때문에 보살을 하나 만들려면 보살이 함께 와줘야 되는 거예요. 그러거나 영적으로 그 진짜 몸뚱이(보살 몸, 보신)를 가진 관음․지장․문수․보현 같은 불과(佛果)를 이룬 그 보살이 와서 그 사람을 공부시켜야 돼. 마장(魔障)을 딱 막아줘야 돼. 외마를 막아주고. 그리고 문제가 있으면 전부 제거해 주고. 빙의가 되어 있으면 제거해 주고. 업장이 크다면 씻어주고, 소멸해 주고. 그렇잖으면 안 돼.

 

������다섯째, 사중죄(四重罪)정도는 소멸해줘야 돼. 극락정토에 가려면 사중죄 정도는 반드시 소멸이 되어야 돼. 그런데 우리는 많은 과거생에 사중죄를 지었거든. 이 사중죄를 가지고, 이 업을 가지고는 극락을 못 가. 문수보살님의 사중죄 소멸은 그분의 고유권한으로 주어져 있어요. 고유권한, 아시죠?


그런데 선불교에서는 '심즉시불이다'라고 하거든. 여러분, 이게 1300년 동안 내려왔습니다. 깨치면 불(佛)이다 그거예요. 마음이 곧 불(佛)이니까 마음을 깨치면 불(佛)이다 그거예요. 마음을 깨치면 불(佛)이다? 


돈오점수(頓悟漸修)에서는 그건 아니다. 돈오돈수(頓悟頓修)에 반론을 제기 하는 것은, 깨쳐가지고 업장 ‧ 탐진 삼독 등등을 다 씻어버려야 한다. 보림이 필요하다. 보림이 다 잘 되어 버리면 부처이다. 여러분, 그게 부처입니까?

 

아니지요. 그건 아라한으로 보는 거예요. 그러면 아라한이지. 그래서 우리 입장에서 볼 때는 돈(頓)도 아니고, 점(漸)도 아니어요.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더 참고 될 말씀을 많이 해주는 거예요. 안 그렇습니까? 


지금 아인슈타인이 유(有)다, 무(無)다(진공이 있다, 없다)하는 것을 거의 종식시킨 것 같이 되었는데, 나보고(우리보고) 물어보면 여러분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닌 거예요. 진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거예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 영산불교에서 말하는 비아설(非我說)이 나옵니다. 비아(非我)라야 윤회합니다. 힌두교(브라만교)의 아트만 갖고는 윤회를 못합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설명할 수 있어야 돼. 


내가 가만히 보니까 이것을 몇 사람이 알더라고요. 아트만 가지고는 윤회가 안 된다. 아트만은 범(梵)과 본질이 똑같습니다. 그 범(梵)이 만물을 만들어서, 다시 범(梵)이 낱낱의 개아(個我)‧개물(個物)에 들어가 버렸다고 했지요. 그것이 아트만이어요.

 

그러니까 우리 사람도 아트만을(실체를) 지니고 있다 그거예요. 그런데 그것 가지고는 윤회가 안 된다고요. 그 아트만은 우리 영산불교에서 말하는 1번 영체(본체)예요. 본체 갖고는 윤회를 못하는 거예요. 그건 순수히 지고지선 하니까. 그것 갖고는 안 되는 거예요. 그것은 윤회 밖에 무시무종(無始無終)으로 있었어요. 


윤회하려면 2번 영체, 3번 영체, 4번 영체까지 생겨야 이 사람 몸을 받아가지고 악도로도 가고, 육도를 윤회하는 거예요. 여러분, 스님의 말을 꼭 알아들어야 됩니다. 이해해야 됩니다. 업을 지으면 인연 따라서 2번 영체, 3번 영체가 생긴 다고요.

 

그래서 1‧2‧3번이 생겼어. 우주법칙에 의해서 생겼어요. 그거 3번까지 생기면 어떻게 되느냐? 3번까지 생겨서 자그마한 업을 지으면 하늘과 성중으로 왔다 갔다 하지. 육도윤회는 못하지. 


그러나 4번 영체가 생길 정도로 업을 지어 놓으면 1‧2‧3번 영체가(본체가) 엄마 뱃속에 탁 들어가잖아요. 4번이 이제 3번 영체에 딱 붙어가지고 똑같이 자라. 자라되, 이 몸하고 영체하고 딱 중간에 서서 접착 구실을 한다고.

 

그렇기 때문에 몸뚱이와 이 4번 영체는 털구멍하나도 틀리지 않아. 90살 먹은 꼬부랑 할머니가 죽으면 4번 영체가 어쩐다고? 무주고혼으로 있을 때에는 그대로 꼬부랑 할머니로 돌아다녀. 


19살 먹은 애가 곱사(곱추)였으면 그 죽은 놈도 곱사예요. 그럽니다. 그런데 그 4번 영체는 어쩐다고? 이것이 이 사바세상의 조건에 맞아서 생기는 거예요. 물리학적으로 말하면 밀도가 맞아야 돼. 밀도가 맞아서 여기에서 사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저승을 가게 되면, 지옥을 가게 되면 지옥하고 이 사바세상의 기가(조건이)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4번 영체는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러나 4번 영체의 안쪽 것은 따라가요. 


안쪽 것은 따라가기 때문에 대성자가 볼 때는 ‘아! 저 엄마가 다섯 살 먹은 놈하고 같이 물에 빠져 죽었구나. 혹은 어떻게 횡사해서 죽었구나’하고 아는 것은 지옥에서 엄마가 애기를 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겠습니까?

 

하늘을 갈 때에는 1‧2‧3번이 가되, 바깥 몸뚱이인 3번 안에 1번 2번이 그 속으로 겹쳐있어요. 밀도가 다르기 때문에 탁 겹쳐져요. 알았습니까? 3번 2번 1번 영체는 올라갈수록 입자가 적어져요. 이 정도는 이해할 거예요. 알아듣기 어려워도 이 정도는 알아야 돼. 그래서 1‧2‧3번 영체는 하나로 꽉 뭉쳐있습니다. 하나로 영원히 뭉쳐져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1번은 본체이고, 주인공이어요. 부처님께서 이것이(1번이) 주인공이라고 하셔요. 그래서 우리도 ‘아하! 이것이(1번이) 주인공이구나’하고 안다고. 선(禪)에서 말하는 주인공은 이것이(1번이) 아닌 이것의 본체, 소위 일심진여라든지, 불성이라든지, 우주본체, 이것을 주인공이라고 하잖아요. 진아(眞我)라고도 하고요. 이건 말이 안 됩니다.

 

이것은(불성은) 나의 진아(眞我)도 되고, 여러분의 진아(眞我)도 되고, 저기 우리 땡삐의 진아(眞我)도 되고, 저기 산의 진아(眞我)도 되고 해. 그 진아(眞我)와의 용어가 틀린 거예요. 그때는 본체라고 해야 돼. 주인공은 1‧2‧3번 영체입니다. 선(禪)에서는 이걸(일심진여, 불성, 우주본체) 주인공이라고 해. 그 주인공이라는 용어가 틀리는 거예요.

 

3번 영체가 하늘을 갈 때에는 관문이 있습니다. 하늘의 그 안락하고 평안한 것 등에 의해서 3번 영체가 활짝 핍니다. 어떻게 피느냐? 미스코리아보다도 더 예쁘게 핀다고요. 알았습니까? 지옥을 갈 때에는 1‧2‧3번 영체가 어떻게 되는 줄 압니까? 


그 4번 영체 안부분이 지옥의 조건에 맞게 되고, 아귀세계에 갈 때에는 그 세계의 조건에 맞게 되는데, 배가 풍만하고 목구멍이 아주 가늘어요. 그렇게 탈이 바뀌어 진다는 말이어요. 그러나 1‧2‧3번 영체는 그대로 뭉쳐있다 그거예요. 이것이 본체입니다.


사람 몸을 받아 올 때에는, 수정할 때 본체가 들어가야 사람이 됩니다. 윤회의 주인공이 됩니다. 이것까지 알았지요? 아귀세계나, 하늘세계나, 성중세계나, 보살세계나, 붓다의 세계는 몸뚱이가 없는 세계입니다. 알지요? 


3번 영체가 성중하늘을 갈 때에는 2번 영체가 탁 와가지고 3번 1번이 그 속에 딱 겹쳐있단 말이에요. 입자가 적은 3번 영체부터, 무주고혼부터는 초미립자로 되어 있습니다. 소립자를 더 지나가서 초미립자로 되어있는 거예요.

 

그러니 이것은 볼 사람이 없어. 삼매에 들어가서 지혜의 눈으로 보살, 상품보살, 붓다가 보는 거예요. 천인을 봤다는 사람이 있습니까? 거의 없지요. 기독교에서 한 사람 있었어요. ‘돈 모드코비’인가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이름이 그 사람뿐입니다. 그래서 천국의 생활에 관한 책을 썼잖아요. 


그러니까 '칸트'가 그걸 부인(부정)했어요. 사람의 오성(悟性,감성·이성과 구별되는 인식능력)은 한계가 있어. 형이상의 세계는 못 보는 거예요. 칸트에 의하면 볼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건 맞아. 그러니까 보려면 이 한계를 벗어나야 돼. 벗어나서 불보살의 가피를 입어야 비로소 보는 거예요.

 

극락은 1번 영체가 갑니다. 그때 2번 3번은 속으로 들어갑니다. 1번 영체가 가지만 그 속에 2번 3번이 겹쳐있다. 그런데 극락은 너무너무도 여기에서 머잖아요. 우선 여러분이 이해하기 쉽게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렇게 표현하면 또 반박할 사람이 있어요. 거기는 적멸의 세계인데, 시공을 초월한 세계인데, 차별세계를 벗어나 버렸는데 뭘 멀고 가깝고 하느냐고 할 거예요. 그걸 몰라서 하는 것은 아니어. 여러분이 이해하기 쉽게 하는 거예요.

 

저 극락세계, 서방으로 십 만억 불국토를 넘어서 있잖아요. 영적인 개념에서 보면 그 말이 맞습니다. 거기의 조건은 여기의 사바세상하고, 하늘세계하고, 성중세계의 여건하고 아주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당신의 큰 위신력으로 여러분의 꼬마 아기를 만들어 놓은 거예요. 그 놈은 거기의 여건에 충분히 살 수 있어요. 1‧2‧3번 영체가 그 꼬마 속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거예요. 믹스가 되어버려요.

 

그러면서 정말로 해탈신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앞에서 말한 하늘신이 문제가 아니어요. 성중 몸뚱이가 문제가 아니어. 정말로 경에는 32상을 갖춘다고 하지. 그러나 32상은 붓다만이(붓다의 저 보신들이) 갖추어요. 


이 보살들의 얼굴은 하늘 천인들하고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기가 막히지. 그리고 몸에서 방광을 하니까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여러분, 방광을 상상해 보세요. 전번에 어느 TV에서 빛의 축제를 보여준 것 같은데, 한번 보세요. 현란할 거예요.

 

그러나 미타정토의 그 부처님 몸에서 나오는 이 빛들, 그 많은 보살들에게서 나오는 빛들이 어우러져 가지고(빛들이 서로 교합해서), 그 분위기가 극치를 이루는 아름다움입니다. 여러분, 여름 한 낮에 다이아몬드를 밖에다가 놔두고 보세요. 이것이 발산해가지고 어떻게 됩니까? 참 아름답지요. 그 다이아몬드가 천만가지 색깔을 지닌 투명한 다이아몬드라고 합시다.

 

그때 나오는 빛깔이 또 어떠하겠습니까? 아까 그것보다도 훨씬 더 수승하겠지요? 그런 다이아몬드가 천개 만개가 있어서 어우러져서 스스로 발산하면 어떠하겠습니까? 이 광경은 말로 표현이 안 되는 거예요. 그렇게 아십시오.

 

붓다의 세계는 또 어떠한 줄 압니까? 여러분들이 꼭 아셔야 할 것은 미타국토의 꼬마는 영원히 꼬마예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저기 붓다 세계의 불신(佛身)은 어떠한 줄 알아요? 애기가 커. 그래서 완전히 사람 몸을 갖추고 있어요. 


그것이 달라. 그 몸하고 1‧2‧3‧4번 영체가 계합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불신(佛身)을 가지고 있는 이 수행자의 1‧2‧3‧4번 영체가 어찌나 빛과 같이 깨끗하든지. 무량광하고 털끝만큼 틀려도 계합이 안 돼.

 

그러니까 우리가 땡삐를 만져도 씻어주는 거예요. 바깥에만 갔다 와도 그 무량광 빛덩어리로 영체를 씻어 주는 거예요. 그걸 유지 하려고 하니까. 그래서 그 나하고 이것하고 믹스가 아닙니다. 이때는 그것이 들어가 버립니다. 


그 불신(佛身)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그 불신(佛身)의 위력은 우주적이어요. 왜 우주적이냐? 붓다는 대적정삼매에 들어가서 우주 본체와 하나가 되어 버립니다. 자기의 법신불이 생긴다고 했지요. 그 법신불이 구체화 된 것이 불신(佛身)입니다. 아셔야 돼. 그래서 4영체까지 합해진 이 법신불은 우주적인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거예요.

 


여기서 지금 우주라는 말이 나오는데, 지금의 천체물리학에서는 이 우주가 어찌나 넓던지, 끝도 갓도 없이 넓어요. 지구도 하나의 별이거든요. 지구만한 별 덩어리가 얼마나 많으냐? 여러분 아실 거예요. 2,000억 정도 지니고 있는 그 한 집단을 섬우주라고 해요. 그 섬우주가 수 천 개라고 해요.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별이 얼마나 많지요? 물리학자들은 이걸 우주라고 봅니다.

 

그런데 영산불교에서는 그것은 현상계이고, 적멸 묘유 해탈오계가 또 그만큼 있어. 그래서 우리 영산불교의 어느 학자는 '우주정법계'라고 했단 말이어요. 그건 자기가 지은 주인 이름입니다. 그렇게 하더라고. '우주정법계'를 주관하시는 왕이 붓다의 붓다이신 석가모니부처님이셔요. 이거 기가 막힌 거예요. 지금 천문학자, 물리학자들이 아는 우주만 해도 이건 수수께끼라고 했어요. 아인슈타인도 수수께끼라고 했어.

 

공부하면 할수록 이건 오리무중이라. 뉴턴은 뭐라고 했느냐? 뉴턴(Newton, Sir Isaac 영국의 물리학자·천문학자·수학자(1642~1727). 광학 연구로 반사 망원경을 만들고, 뉴턴 원무늬를 발견하였으며, 빛의 입자설을 주장하였다.)이라고 하면 대단한 분입니다. 고전물리학에서 최고의 자리를 찾으신 분인데, 그분은 자기가 아는 것은 저 강변의 모래 한 알 정도라고 했어요.

 

그런데 아인슈타인에 와서는 ‘역시 우주는 수수께끼다. 나로서는 수수께끼이다. 그러나 이 수수께끼가 영원히 수수께끼일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라고 말한 거예요. 아인슈타인은 굉장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이지만 이 불교의 화엄사상을 접했습니다. 여러분, 화엄사상을 접했어요. 


그래서 무릎을 친 거예요. 오직 불교만이 진정 미래의 세대를 리더할(이끌) 만한 종교로구나. 그래가지고 종교를 3단계로 구분한 분이 그 분이어요. 세 종류로 말한 거예요. 여러분, 그거 아시는지 모르겠어.

 

▸첫 번째, 원시시대의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가지고 종교를 만들었다는  거예요. 원시의 애니미즘(정령신앙(精靈信仰)이라고도 함)이 있지요. 태양신을 믿는 다든지, 혹은 전쟁신도 믿고 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공포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떤 공포냐? 


그 당시는 기술도 떨어졌고, 지금처럼 이렇게 비옥한 땅도 개간할 능력도 없고 해서 하루하루의 삶이 참 고단했지요. 그런데다가 무서운 질병이 오잖아요. 오면 죽으니까 이것이 두려웠어. 전쟁 질병 천재지변 등은 지금의 사람들도 무서워하지. 지진 화산폭발도 무서워하지. 이런 것들 로 인한 죽음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 그런 원시 신앙을 만들어 놓은 거예요. 이것을 원시종교라고 합니다.

 

▸둘째, 아리스토텔레스가 분류한 거예요. 이제 사회생활을 하잖아요. 사람들의 수가 많이 불어나기 때문에 서로서로 교류한단 말이에요. 우리나라 같으면 각 도의(각지의)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고, 문물을 바꾸고, 사고팔고 해서 편하게 살아가잖아요. 국가 간에도 서로 교역을 하고, 교류도 하잖아요. 


이것을 사회적이라고 해요. 이 사회적인 윤리종교가 나온 거예요. 이 사회가 안정되고 잘살려면,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해야 돼. 어떻든 이 두 번째 단계의 종교는 이런 것을 포함하되, 반드시 유일신(唯一神)이 나와요. 


유일신(唯一神). 범(梵)과 같은, 그래도 힌두교의 범(梵)은 의인화했지만, 범(梵)보다도 더 심하게 인격화한 그런 종교가 나와요. 그렇게 인격화를 심하게 하는 것이 아니어. 그걸 내가 ‘어떤 종교입니까’라고 묻지 않아도 알겠지요.

 

▸셋째, 아인슈타인이 그 우수한 두되로 연구를 하고 불교를 접해 보니까 '원리', '어떤 원리'를 알게 되어요. 무슨 원리인지 아시는 분? 연기의 원리(緣起의 原理)입니다. 좀 달리 말하면 인연의 도리(因緣의 道理), 인과법(因果法, 업의 법칙, 카르마의 법칙)등 이런 것이 나와요. 


불교는 절대자를 인정하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연기(緣起), 인연(因緣)에 의해서 전부 진화해가지고 된 거예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도 깊고 깊기 때문에 이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야 됩니다.

 

여러분,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없다. 연기(緣起) 안에는 의식적인 동인, 효율적인 동인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 없어요.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있어야지. 저 절대 신을 믿는 사람들은 거기까지만 본 거예요. 지휘자가 있어야 되지 않나? 


그러니 이 원리 안에, 그걸 의식적 동인이라고 해. 의식적 동인(意識的 動因). 뜻 의(意), 알음알이 식(識), 의식적 동인이라고 그래. 저 하늘을 봐라. 별들이 저렇게 많은데, 다 각기 궤적을 따라서 운동(운행)을 하는데, 그 수억이 문제가 아니라 앞에서 말한 2천억×2천억을 해도 더 되어. ‘저 충돌하지 않고 정밀하게 돌아가는 저 별들을 봐라.

 

하나님 아니고는 누가 저런 것을 만들었단 말이야’하는 것이 저 종교야. 조물주가 아니고서야 누가 만들었단 말이야. 그러나 이것을 '효율적 동인'이라고 해. 효율적 조화, 효율적 동인이 있기 때문에, 또 '의식적 동인'이 있기 때문에 이 영혼체는 사람을 보면 오른쪽 눈하고 왼쪽 눈하고 구도가 똑 같아요. 안 그럽니까? 


눈이 하나 있고 한쪽 눈이 세로로 있으면 어떻게 되나? 그건 아니어. 딱 지선을 그어놓고 양쪽을 보면 아주 정교하게 조화가 되어있어. 이걸 효율적 동인이라고 해. 그러니까 이 연기(緣起), 연기(緣起)에 대한 내용을 모르고 저 사람들이 우리 불교를 얕잡아 보는데, 그 깊은 철학사상을 들어야지.


그리고 이제 TV에 나가게 되면, 스님이 대 여섯 가지 엄청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처음 무아설(無我說)을 가지고 비아(非我)다 하고 나가는 거예요. 이것도 지금 핵폭탄이어. 그러니까 발칵 뒤집히지. 


이 모든 종교를 포괄하고, 선도하고, 과학을 선도하고, 철학을 선도하는 것은 불교뿐이어요. 여러분, 불교뿐이어. 이런 고도의 철학과 과학을 지닌 종교가 없어. 불교밖에 없어. 어떻게 해서 이 불교가 이렇게 조그랑 망태기가 되었습니까?

 

이거 슬픈 일인 거예요. 정말 슬픈 일인 거요. 우리 불교에서만이 보살이 나오고, 붓다가 나오는 거예요. 위대한 불교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어떻게 보살이 나오느냐고. 보살이 나오는 종교가 어디에 있느냐고. 없어. 


그래서 때가 왔기 때문에  앞으로 스님이 하나씩 하나씩 터뜨릴 거예요. 그러면 나는 이 사상만 이렇게 전하고 가면 돼. 몫은 여러분한테 있어. 여러분이 수준을 높이라고. 현지사에서 나온 책, 이건 세상에 없는 책이어요. 이 책을 정독 했으면 좋겠습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Ⅱ》,〈관음태교〉,〈관음태교에서 부처님천도재까지〉등등. 이러한 천도재가 없고, 이런 태교가 없는 거예요. 이런 것을 여러분이 숙지해야 되겠어. 그래서 부지런히 공부해서 수준을 향상시켜 주시오. 현재 여러분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고 ‘아이구! 이거 어느 교수보다 났네’라고 했다고요.

 

무아(無我)인데 뭣 하러 천도를 해. 어느 종단에서 우리를 따라서 천도바람이 불었어. 우리를 따라서 한 술 더 떠가지고 49일×7일을 하네. 343일을 천도한다든가? 이거 웃기는 일이지. 여러분,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됩니다. 


자기 소신에 살아야 됩니다. 자기의 철학이 무아(無我)이면, 하나도 없다고 하면, 가는 놈도 없고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는 놈도 없다고 하면, 그 철학을 바탕으로 해서 하루를 살더라도 바르게 살아야 양심이 있고 그게 사람이지 어떻게 변절 합니까? 이게 우리 영산불교의 주장이고 생각입니다.


무아설(無我說)은 윤회설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무아설(無我說)은 윤회설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 만유는 인연 따라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오. 인연소생(因緣所生). 인연 따라 진화합니다. 


인연생기(因緣生起). 이건 진리예요. 이건 자기들보다도 더 강하게 주장해. 그래서 지금 제법무아(諸法無我)라고 합니다. 그러나 제법무아(諸法無我)가 '용수'때 와서는 제법개공(諸法皆空)이 되어버렸어. 참말로 공(空)이 되어버렸어. 이게 큰일입니다. 사람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라는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졌어요.

 

색(色)은 지수화풍으로 구성된 물질이어. 수상행식(受想行識)은 정신적인 것, 그러니까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으로 이루어졌어. 이 정신적인 것을 스님이 삼매에 들어서 관해보니까, 이인슈타인도 선정정도에 들어간 분이 아니면 그 물리학이 안 나옵니다. 보니까 영혼체가 있어. 영혼체가 있더라 그거예요. 


이 몸뚱이는 죽어도 나가는 본체가 있습니다. 1․2․3․4번 영체가 있습니다. 1․2․3번 영체는 영원히 죽지 않기 때문에 하늘을 가고, 어디를 가고, 사람 될 때가 되어도 요놈이(1․2․3번 영체가)와.

 

요놈이 와야 복사체인 몸뚱이가 나오는 거예요. 내가 금생에 사람을 죽였으면 금생에 징역 가지. 그래도 그 업은 너무도 무겁기 때문에 지옥을 가요. 그러다가 언젠가 옵니다. 언젠가 오는 놈하고 나하고 같아야지. 내가와야지 보살이 오겠습니까? 보살이 온다고 하면 말이 되겠소? 무아(無我)라고 하면 그거예요. 


그러나 본체가 있기 때문에 언제나 행위 하는 놈하고, 업보를 받는 놈하고 같아야 되는 거예요. 안 그렇습니까? 그런데 무아설(無我說)은 그것이 아니어. 이러한 무아(無我)해석을, 또 부처님께서 왜 무아(無我)라고 하셨느냐? 그걸 몰라. 이 상대세계(현상세계)에 사는 우리 인간은 고해(苦海)에서 산다고 하잖아요.

 

이 현상세계는 고해(苦海), 고(苦)가 충만 되어 있어. 그냥 고통이어요 고통. 하늘세계도 죽을 때 오쇠(五衰)현상이 있어. 그것까지는 이야기할 수 없고, 어쨌든 하늘도 죽어야 할 때가 있어. 거기서 영원히 살면 좋지. 


죽는 고통이 있어. 그 서러움이 있어. 어쨌든 간에 육도는(현상세계는) 고통이 있어. 이 고통의 세계에서 건져 주려고 하는 분이 부처님이어요. 이게 부처님의 자비야. 정토보살부터 자기라는 생각이 없어. 자비야. 아상이 없어. 내 것도 없어.《금강경》의 말씀이 맞는 거예요. 불쌍한 중생을 건질 생각이어요.

 

그래서 나(我)라는 생각을 하지 말라. 나의 몸뚱이에 대해서 집착하지 말라. 이 몸뚱이는 가짜니까(비아니까). 이 몸뚱이는 언젠가 죽어버릴 것이어. 이것은 가짜니까 여기에 집착하지 말라. 집착하고 보니까 죄를(업을)짓더라 그거예요. 업을 짓는 원인이 집착이어요. 집착의 원인은 욕심(탐욕)이어. 그러니까 그것을 끊어주기 위해서 무아(無我)를 말씀하신 거예요. 그리고 현상계의 고통에서 건져주기 위해서 무아(無我)를 말씀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현상세계에 적용되는 것이 무아(無我)예요. 그 무아(無我)를 저기 본체계까지 연결해 버리면 큰일나버려. 본체계에는 엄연히 그 아름다운 상호를 가지신 보살님이 계셔요. 지금 그걸 없다 한다고요. 


그 보살도 없고, 부처도 없고, 극락도 없고, 지옥도 없고, 그 지옥에 가서 벌 받는 것을 일체 부인(否認)해버려. 영혼체도 없다고 해버려. 귀신도 없어. 제사지낼 필요도 없어. 그러려면 뭣 하러 살아? 뭣 하러 먹으려고 해? 뭣 하러 공부해?

 

저 유물론자들처럼 쾌락을 생의 목표로 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멋지게 살아야지. 도덕이 필요 없는 거예요. 무아설(無我說)은 도덕의 기반이 무너져 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무아설(無我說)을 잘 해석해야 됩니다. 비아(非我)로 대체해야 됩니다. 비아윤회(非我輪廻)인 거예요. 아셨지요?


이렇게 말을 해도 여러분들이 다는 이해 못할 거예요. 며칠 전에 온 사람은 참말로 모르고. 한 5년 다닌 분도 그 일부가 조금 알아들을 거야. 그렇잖습니까? 그래서 여러분들이 다 알 때까지 스님이 노래를 부를 거예요. 


스님이 내 놓은 영산불교 비아(非我)의 사상, 이건 핵폭탄입니다. 그래서 지금 종단에서 야단 났는 거예요. 교수들이 야단나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최고의 학승이라는 사람, 석학이라는 사람들의 ‘근(根)이 없어져 버리면 식(識)도 없어진다’는 이야기, 이건 참 희한한 이야기이지. 여러분의 본체가 있는데 이걸 아예 모르니까 그러지요.

 

식(識)은 왜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없느냐? 몸이 있어야 배경을 반연해서 식(識)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느낌 이후 생각을 하는 거예요. 


몸이 없어 버리면 이 식(識)의 활동이 안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몸체가 윤회의 주체가 되어야 되는 거요. 비아(非我)라는 것은 어찌나 많이 업을 지었던지 숯검정이 되어버렸어. 부처님께서 볼 때 진흙덩어리가 되었단 이에요. 여러분, 진흙덩어리가 되었는데 저것이 나(我)라고 하겠소?

 

‘저건 나(我)가 아니야’라고 말하겠지. 씻고씻고 씻으면, 다 정화가 되면, 자기의 몸뚱이인 1․2․3번 영체가 순수하고 깨끗하게 드러나. 이건 유아(有我)인 거예요. 이제 본체계부터는 유아(有我)인 거예요. 알았습니까? 지금 부처님께서 보실 때에는 정말 한심한 일입니다. 정말 한심한 일이지.


지금 이 주제를 가지고 나왔는데, 이게 아니라고 해가지고 방영금지 한 거예요. 저들이 죽으니까. 현지사를 얕잡아 본 거예요. 영산불교를 얕잡아 본 거예요.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천마나 섭해 가지고 무슨 아는 소리나 하는 줄 알았는데, 이론이 논리 정연한 엄청난 철학을 들고 나오거든. 이번에 우리 홈페이지에 게재된 성명을 봤지요. 그걸 보세요. 얼마나 논리정연 합니까? 모두 집에 가시면 빼보십시오.

 

 

출처/2010.4.21.수(음3.8) 큰스님 춘천 법문중 발췌